사업자들이 스포츠시설을 짓겠다며 나랏돈을 싼 이자로 빌린 뒤 호텔과 학원을 운영한 사례가 정부 점검에서 무더기로 드러났다. 연간 2600억원 규모로 커진 스포츠산업 융자사업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합동으로 스포츠산업 융자사업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3일 결과를 발표했다. 점검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이뤄졌다. 공단이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집행한 융자 2860건 가운데 600건을 골라 융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사후 관리는 제대로 됐는지 살폈다.
스포츠산업 융자는 공단이 스포츠 시설을 짓거나 운영하는 사업자에게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사업이다. 금리는 연 2~3% 수준으로, 재정경제부가 고시하는 공공자금 융자 금리에 따라 분기마다 바뀐다. 시중 대출보다 훨씬 싸다. 한 업체가 최대 85억원까지 빌릴 수 있다.
돈의 출처는 국민체육진흥기금이다. 스포츠토토와 경륜·경정 수익금 등으로 조성되는 공적 기금으로, 국민 체육 진흥에 쓰라고 모아 둔 돈이다. 공단은 은행을 통해 담보를 잡고 대신 빌려주는 ‘대리 융자’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한다. 사업자가 시설을 지어 국민에게 개방한다는 조건으로 싼 이자를 적용받는 구조다.
규모는 가파르게 커졌다. 2019년 560억원(129건)이던 융자액은 2020년 1261억원(822건), 2021년 1361억원, 2022년 2289억원, 2023년 2321억원을 거쳐 2024년 2769억원(439건)에 이르렀다. 5년 만에 다섯 배로 불었다. 2020년 건수가 급증한 것은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체육시설에 운영자금을 긴급 지원한 영향이다. 2025년 기준 전체 융자 규모는 약 2600억원이다.
지원 한도와 규모가 이렇게 커진 반면,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 살피는 장치는 그만큼 따라오지 못했다는 것이 이번 점검의 출발점이다.
가장 뚜렷한 문제는 융자금이 애초 목적과 다른 곳에 쓰인 사례다. 점검 결과 스포츠시설을 짓겠다며 돈을 받은 뒤 숙박시설이나 학원 등 다른 용도로 쓰거나, 계획한 시설을 아예 짓지 않은 사례가 13건, 142억원 확인됐다.
사례를 보면 수법이 다양하다. A 사업자는 2022년 스크린골프장을 설치하겠다며 공단에서 19억원을 받았다. 점검 당시 해당 사업지에서는 호텔이 운영되고 있었다. A는 정산 자료로 위조한 공사 세금계산서까지 공단에 냈다. B 사업자는 2023년 골프 훈련용 연수시설을 짓겠다며 43억원을 받았지만, 건물은 레저형 숙박시설로 쓰이고 있었다.
C 사업자는 2021년 5층 규모 수영장과 체육도장을 갖춘 스포츠 복합건물을 짓겠다며 15억원을 받았다. 건물 대부분은 학원이었다. D 사업자는 2024년 테니스장 등을 짓겠다며 20억원을 받고는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채 공실로 비워 뒀다.
돈을 어디에 썼는지 증명하는 정산 단계도 허술했다. 융자사업과 직접 관련 없는 세금계산서나 사적인 지출 내역을 정산 자료로 낸 의심 사례가 84건, 141억원에 이른다.
융자를 받은 법인이 아닌 다른 법인 이름의 세금계산서를 낸 경우가 있었다. 해당 업체가 수행하는 정부의 다른 과제에서 발생한 세금계산서를 스포츠 융자 정산 자료로 낸 사례도 확인됐다. 유흥업소, 병원과 약국, 식당, 쇼핑몰 등 사업과 무관한 개인 카드 결제 내역을 낸 경우도 다수였다.
사업자 본인 주머니로 돈이 흘러간 사례도 있었다. 사업자 본인에게 고액 급여를 주거나 본인 소유 건물 임차료로 쓴 경우가 15건, 55억원이다. E 사업자는 스크린골프장 운영자금 5억원 가운데 6000만원을 본인 급여로 썼다. F 사업자는 운영자금 5억원 중 4억원을 본인 소유 건물 임차료로 지출했다. 사업자 본인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지출을 막는 규정 자체가 없었던 탓이다.
명의만 빌려준 경우도 나왔다. G 사업자는 스크린골프장을 설치·운영하겠다며 16억원을 빌렸지만, 공단 승인 없이 개업 시점부터 다른 사업자 H가 운영하고 있었다. 융자 신청자가 아닌 제3자가 운영한 사례는 5건, 48억원이다.
정부는 문제의 뿌리를 공단의 관리 부실에서 찾았다. 점검 결과를 정리하면 공단은 돈을 내주기 전에도, 내준 뒤에도 확인을 소홀히 했다.
스포츠 융자는 시설을 지어 국민에게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싼 이자를 주는 사업이다. 그렇다면 공단은 적격자를 골라야 하고, 공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확인해 가며 돈을 나눠 줘야 하며, 돈이 나간 뒤에는 현장점검과 실태조사로 목적 외 사용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공단과 대리 융자를 맡은 은행은 시설이 계획대로 지어졌는지 확인하지 않고 돈을 내줬다.
시설자금 융자는 공사 진척도(기성)를 확인한 뒤 집행해야 하지만 확인 없이 지급됐다. 사업 결과보고서에는 공사계약서나 세금계산서 같은 핵심 증빙 없이 현장 사진 2장만 첨부돼 있었다. 시설이 사업계획대로 지어졌는지 판단할 근거가 사실상 없었다.
운영자금도 마찬가지였다. 승인된 사업계획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지출 금액이 적정한지 증빙을 검증해야 하지만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부적정한 정산 항목이 섞여 있어도 걸러내지 못했다. 융자 규정에 따라 실시하는 사후 실태조사는 사업 만족도를 묻는 수준에 그쳤고, 현장점검은 전체 융자의 약 5%에서만 이뤄졌다. 100건 중 95건은 현장을 보지 않은 것이다.
심사 단계도 형식적이었다. 융자 결정과 변경, 취소를 심의하는 공단 융자심의회가 최근 4년간 2800여 건을 심사했지만 금액을 깎아 조정한 사례는 6건에 불과했다. 사업비 심의 기준과 조정 사유도 불명확했다.
편중 문제도 드러났다. 최근 5년간 전체 융자 지원액의 약 60%가 스크린골프와 대중형 골프장 등 골프 업종에 몰렸다. 체력단련장(헬스장)은 6.2%, 수영장 6.0%, 볼링장 3.5%에 그쳤다. 국민 체육 진흥을 내건 기금이 사실상 골프 산업 지원 자금처럼 운영된 모양새다.
스포츠 융자는 은행이 담보를 잡고 빌려주는 방식이다. 담보 가치가 큰 부동산과 설비를 갖춘 골프장과 스크린골프장은 은행 심사를 통과하기 쉽다. 반면 동네 헬스장이나 수영장, 소규모 체육시설은 담보가 약해 문턱을 넘기 어렵다.
코로나19 이후 스크린골프 수요가 급증하며 창업이 몰린 것도 한몫했다. 제도가 담보 있는 업종에 유리하게 짜여 있는 한, 융자 접근성의 격차는 저절로 좁혀지지 않는다.
정부는 목적 외로 쓴 융자금 약 130억원을 해당 사업자로부터 회수하도록 조치할 계획이다. 세금계산서 위조처럼 중대한 위법이 명확히 확인된 사안은 수사의뢰한다. 정부 융자를 상대로 한 범법 행위에 엄중히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증빙이 부적정해 목적 외 사용이 의심되는 사례는 공단이 추가 확인한 뒤, 사실로 드러나면 그 금액도 회수한다.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도 함께 내놨다. 핵심은 관리 주체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시설 설치 여부와 공사 진척 서류 확인은 은행 몫이었다. 앞으로는 공단이 직접 공사 현장과 관련 자료를 검토해 융자금 집행이 적정한지 확인한다. 은행에만 기대던 관리 체계를 공단 직접 관리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스포츠 융자 집행 지침’을 새로 만들어 집행 기준도 명확히 한다.
사후 현장점검 비율은 현행 5%에서 확대한다. 사업자 본인 인건비와 본인에게 돌아가는 임대료는 지원 금지를 원칙으로 못 박는다. 일정 규모 이상 융자는 외부 회계법인이 집행 적정성을 검증한다. 결과보고서는 사업계획에 맞춰 집행 내역을 충실히 적도록 하고, 모든 증빙은 계약서와 세금계산서, 이체 확인증 등으로 검증 가능하게 바꾼다.
골프 편중을 완화할 방안도 담겼다. 골프 외 스포츠 업종에 융자 안내를 강화하고, 담보가 부족한 사업자를 위해 신용보증 제도를 도입하며, 금리 우대 등으로 지원 방식을 다양화해 업종별 접근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김정국 국무조정실 부패예방추진단 부단장은 “점검 결과 공단의 관리 부실로 인한 목적 외 사용 등 많은 문제점이 확인됐다”며 “스포츠 융자금이 제대로 사용돼 국민 모두의 스포츠라는 지원 취지가 구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스포츠산업은 성장 산업이다. 문체부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스포츠산업 매출은 84조7000억원으로 전년보다 4.5%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사업체는 13만1764개, 종사자는 48만9000명에 이른다. 코로나19로 움츠러들었던 2020년 이후 5년 연속 성장세다. 산업이 커지는 만큼 시설 투자 수요도 늘고, 싼 이자의 공공 융자는 영세 사업자에게 소중한 종잣돈이다.
문제는 신뢰다. 공적 기금이 호텔과 학원, 사업자 개인 급여로 새 나가면 정작 돈이 필요한 동네 체육시설은 기회를 잃는다. 이번 점검에서 확인된 목적 외 사용과 의심 사례를 합치면 100건이 넘고 금액은 300억원대에 이른다. 점검 대상 600건이 전체 2860건의 5분의 1 남짓임을 감안하면, 전수 조사 시 문제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번 개선안이 실제 효과를 내려면 공단의 실행이 관건이다. 은행에 맡기던 현장 확인을 공단이 직접 맡으려면 인력과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현장점검 비율을 얼마까지 올릴지, 신용보증 제도가 언제 도입될지 등 구체적 수치와 시점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골프 편중 완화도 안내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담보 중심 심사 구조 자체를 손보는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정책 융자는 스포츠 분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은행에 대리 융자를 맡기고 사후 관리를 느슨하게 하는 구조라면 다른 기금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 이번 점검이 스포츠 융자를 넘어 공공 융자 전반의 관리 체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